오스트리아 빈에서
흘러 흘러 어느덧 오스트리아 빈까지 오게 됐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시작한 나의 여행에 정해진 계획은 없다. Flixbus 노선을 보고 내키는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향했다. 그간 얼마나 많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했던가, 그리고 앞으로 어느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게 될까.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하니 우선 느낀 것은 사람들의 성향이 앞서 여행한 나라와 다르다. 그동안 조용하고 잡담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만 보다가 유머 섞인 대화를 걸어오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낯설었다. 덕분에 예상 질문을 품으며 답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기 시작했다.
빈 체류중 단 한 곳의 호텔에서만 지냈는데 호텔과 가까운 곳에 아시아 음식 전문점이 있었다. 중국과 일본 음식이 메인이며 몇 개의 한국 음식도 파는 곳이다. 마침 빵과 치즈 그리고 감자가 기본인 유럽식이 지겹기 시작했고, 그렇다고 한국 음식을 먹자니 굳이 이곳까지 와서 한식을 찾고 싶진 않았다. 입맛에 딜레마가 생긴 셈이다.
나는 이 식당을 이틀에 한번 꼴로 찾았다. 익숙한 음식에 대한 갈증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럽을 여행하며 느낀 것으로,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는 곳은 아시아 식당과 케밥을 파는 곳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현지인 보다 더 일찍 오픈하고, 더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 배경에는 낯선 타지에서 생존하기 위한 노력이 스몄을 것이다.
이따금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유튜브로 무한도전을 보며 시간 떼우기를 좋아했는데 그럴 때면 꼭 야식 생각이 절로 난다. 하지만 식당과 마켓은 일찍 문을 닫고 우리처럼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도 없다. 유일한 선택권인 아시아 식당과 케밥 중 택해야 했다.
몇 번 얼굴 도장을 찍으니 주인과 직원이랑 가벼운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해졌다. 오스트리아 분위기가 그랬다. 호텔, 식당, 심지어 관광지의 직원까지 영어식 표현으로 프렌들리 하다고 해야 할까? 인사를 나누는 건 일도 아니었다.
식당의 구성원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사장은 오스트리아에 이민을 온 듯하고, 직원은 일을 위해 고향을 떠나 온 것이다.
식사를 주문하면 꼭 내게 양을 더 많이 줘도 되냐 묻는다. 나는 장난스럽게 '아시아 브라더'라 유독 챙겨주는 것이냐'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는데 곱빼기를 서비스로 받고 하물며 모처럼 보는 쌀과 익숙한 맛을 접하니 괜한 고마움이 스몄다. 물론 이런 대화 속에서 오스트리아 여행 정보와 참고해야 할 내용을 얻는 건 덤이다.
중국인이 만든 김치
어느 밤.
이번에는 포장하고 호텔에서 먹으려 식당을 찾아 갔는데 전부터 궁금한 게 있어 질문을 던졌다. 음료를 보관하는 냉장고에 플라스틱 용기가 있는데, 그 안에는 김치처럼 보이는 음식이 있었다. 김치가 맞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메뉴에는 김치가 없기에 처음에는 모양새가 비슷한 중국 음식으로 생각했다.
사장이 하는 말이, 김치를 팔아보려고 유튜브를 보며 직접 만들어 냉장고에 숙성시키는 것이라고. 나는 너무 놀라워 "대단해요"라고 답을 하려고 하는데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포장 용기에 담아 주시며 먹어보라고 갖고 가라 하신다. 손사래를 치며 값을 지불하겠다고 정중히 사양하는데 끝내 봉투에 넣어 챙겨 주신다. 다른 분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 챙겨 가라며 손짓을 하신다.
집 떠나와 여행을 할때. 나는 가급적 한국 음식을 먹지 않으려 한다. 외국에 나왔으면 그곳 음식만 경험하고 싶고, 한식은 참았다가 귀국하면 한 풀이를 하는 게 나름의 여행 루틴이다. 그간 거쳐온 나라에서도 한식의 유혹을 겨우 이겨냈는데, 중국인이 유튜브를 보고 만든 김치를 마주하니 기분이 오묘했다.
김치 종주국에서 온 나의 시식평도 궁금해 하실 것 같아, 거듭 감사 인사를 전하고 다음날 또 방문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 식당을 방문하니 휴무일이다. 안타깝게도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제 와서 든 후회는. 당시 구글 지도 리뷰를 남겨 소감을 전했어야 했다. 다른 방문자들이 이 식당이 얼마나 친절하고 따뜻한지 알렸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리뷰를 쓰면 좋으련만 폐업했다는 안내가 내 기분을 처지게 한다.
김치는 집에서 라면과 함께 먹던 그 맛이다. 그 때문에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싶은 우리 김치의 맛이었다. 이 말이면 얼마나 완벽한 김치였는지 우리 한국인은 다 아실 것이고, 내 소감을 정서와 감성 고스란히 어떻게 전달할지 그게 고민이었는데. 참으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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